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체스를 통해 배우는 인생 · 1부

태지쌤 2026. 5. 27. 18:1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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체스판 위에서 배운 것:
포기하지 않는다는 것

출퇴근길 리체스(Lichess)에서 만난 전 세계 사람들, 그리고 그들에게서 발견한 인간의 태도에 대하여

출퇴근길, 나는 리체스(Lichess)를 켠다.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흔들리면서도, 버스 창밖 풍경을 등진 채로도 전 세계 어딘가의 누군가와 체스 한 판을 둔다. 짧게는 몇 분, 길게는 10분 남짓. 그 짧은 시간 안에 꽤 많은 것을 보게 된다. 체스 말의 움직임이 아니라, 사람의 태도를.

퀸을 잃으면 게임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

체스에서 퀸은 가장 강력한 기물이다. 룩, 비숍, 나이트보다 훨씬 강하다. 그러니 퀸을 잃으면 불리해지는 건 사실이다. 그런데 신기한 건, 많은 사람들이 퀸 하나를 잃는 순간 곧바로 기권해버린다는 것이다. 게임이 완전히 끝나지도 않았는데, 스스로 끝을 선언해버린다.

나도 먼저 기물을 잃을 때가 있다. 불리한 상황이 되면 솔직히 한숨이 나온다. '이거 역전 못 하겠는데'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. 그러나 나는 웬만해서는 기권하지 않는다.

계속 두다 보면, 상대도 실수를 하더라.

포기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일들

끝까지 버티다 보면 몇 가지 일이 생긴다.

1 상대가 방심한다.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사람은 종종 긴장을 놓는다. 그 순간 엉뚱한 수를 두고, 판세가 흔들리기 시작한다.
2 스테일메이트가 나기도 한다. 체스에서 스테일메이트란, 상대방이 움직일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을 때 무승부로 끝나는 규칙이다. 완전히 밀리던 상황에서도 스테일메이트가 나는 경우가 있다. 아주 가끔이지만, 분명히 있다.
3 시간 초과 역전승도 있다. 경기 초반 사소한 수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쓴 신중한 상대가, 정작 중요한 순간에 시간이 부족해 무너진다. 기물 수에서 밀리고 있던 내가 시간 초과 역전승을 거두는 묘한 순간들.

물론 반대도 있다. 내가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을 때 방심하다가 스테일메이트를 내주기도 한다. 우세한 상황이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, 끝까지 집중해야 한다는 것. 체스는 그것도 가르쳐준다.

♟ ♟ ♟

인생도 결국 비슷하다

체스판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. 사람들이 체스에서 쉽게 기권하듯, 인생에서도 생각보다 훨씬 쉽게 포기한다는 것.

조금 불리해지면, 조금 늦어지면, 조금 손해 보면, 그냥 포기해버린다. '난 원래 안 돼', '이미 늦었어', '저 사람한테는 못 이겨'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. 그런데 그 판단이 정말 맞는 걸까?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는데.

나는 특출난 사람이 아니다. 체스 실력도 그냥 평범한 아마추어다. 그러나 웬만해서는 기권하지 않는다는 원칙 하나로, 분명히 이겼어야 할 상대를 이기는 경우가 생긴다.

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. 능력이 뛰어나면 물론 좋다. 그러나 평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도 인내심이 있다면, 버티는 힘이 있다면, 크게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결코 나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. 중간은 간다. 그리고 때로는 상대가 먼저 무너지기도 한다.

포기하지 않는 것. 단순하지만 가장 오래, 가장 멀리 데려다주는 전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.

오늘도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, 나는 체스판을 펼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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